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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허, 국가적 아젠다가 필요하다-중]두터운 장벽 쌓는 선진국들


미·일·EU, 미래형 특허전략 수립…국가적 네트워크도 강화

지적재산권 '3강'으로 꼽히는 미국과 일본, 유럽연합(EU)은 최근 특허전략을 한층 강화하며 기술 보호에 나서고 있다. 우리나라나 대만과 같은 지재권 후발주자들의 추격을 결코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더군다나 선진국 간 특허 심사체계 동일화 및 상호 정보교류 등 지재권을 둘러싼 네트워크마저 공고해지는 모습이다. 국가적인 특허전략이 미흡한 나라들은 보이지 않는 격차가 더 확대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특허의 양적인 면에서 세계 5위권에 진입하면서 선진국과 차이를 좁히고 있다 하지만 특허의 영향력을 반영한 기술력 격차는 미국 등과 수십 배 격차를 보이며 개선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정성창 특허청 전 사무관은 저서 '지식재산 전쟁'에서 "선진국들은 후발주자의 견제에 대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특허권 보호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미래를 움직일 수 있는 특허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하는 등 우리의 소극적 특허정책을 개선해야 할 사항으로 꼽았다.

◆미국, 민관연합체계 공고히…'21C 특허전략' 단행

'특허를 가장 강하게 보호하고 있는 나라' 미국의 특허정책에 있어 핵심은 정부와 민간의 활발한 교류에서 찾을 수 있다. 상무부에 소속된 지적재산 관련 부서들은 민간업체들이 모여 만든 경쟁력위원회와 유기적으로 소통하면서 어느 분야의 특허를 핵심 역량으로 키워나갈지 결정한다. 이를 통해 지식사회의 발전상에 맞춰 지적재산에 대한 중장기적 전략과 계획을 수립·실행해나간다.

또 미국 국제비즈니스연맹(USCIB) 산하 지식재산위원회(IPC)나 지식재산소유권자협회(IPO) 등은 미국 무역대표부(USTR), 특허청 등 관련 기관에 교역 상대국의 불합리한 특허제도나 관행을 개선해줄 것을 적극 요구하고 있다. 다국적 제약기업 화이자는 지난 1970년대 복제의약품 때문에 실적 부진에 시달리던 중 지적재산 강화를 천명하고, 1986년 IPC를 구성하는데 성공해 국가 지적재산 전략의 수립에 있어 유기적으로 공조하고 있다.

세계 최대 특허보유 기업 IBM은 자체적으로 정부 특허정책과 호흡을 맞추고 있다. IBM이 도입한 '공개특허심사제도(Open Patent Review)'는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민간기업과 정부가 특허 출원 및 등록에 함께 참여하는 것으로, 특허심사의 실효성을 높이며 미국 특허청으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다.

그런가 하면 미국 정부는 자국기업이 다른 나라 기업과 특허분쟁이 생길 경우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무역정책과 특허정책을 일원화해 연동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정보기술(IT)이나 바이오 등 논란이 분분한 특허쟁점 사안에서 교묘하게 자국기업의 손을 들어 주거나, 수·출입 규제를 완화 또는 강화하는 방안으로 상대국을 압박한다.

이러한 미국이 올해 '특허청 5개년 전략계획'을 세우며 특허정책을 한층 강화하고 있다. 지난 2002년부터 시행한 '21세기 전략기획'을 바탕으로 한 이 계획은 향후 5년 동안 심사관 7천200명을 증원하고, 기업의 특허출원 목적 및 기술 순환주기 등을 반영해 다양한 심사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무엇보다 경쟁력위원회가 지난 2004년 발표한 '미국을 혁신하자'란 보고서를 기반으로 원천기술 개발에 강한 미국 기업을 특허경쟁에서 우위에 설 수 있도록 한다는 기본 바탕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 눈여겨볼 사항이다.

지난 198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당시 무역적자에 시달리던 미국은 특허권 보호를 강화하는 특허친화정책(Pro-Patent)으로 위기를 헤쳐 나갔다. 지식재산체계를 개혁하면서 제일 먼저 취한 조치가 특허법원을 설립해 특허권 집행을 강화하는 일이었다.

이러한 미국 정부의 적극적인 움직임을 바탕으로 지난 1986년 반도체기업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는 우리나라의 삼성전자와 일본기업들을 D램 제조기술에 대한 특허침해 혐의로 제소한다. 당시 해외기업과 처음 특허소송을 경험한 삼성전자는 8천500만달러에 이르는 거액을 배상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 특허정책 '국제화'…서비스혁신 병행

일본 역시 총리가 중심이 돼 범정부적으로 지식재산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은 정부와 산업계 공동의 염원으로 지난 2002년 2월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총리를 비롯한 관료와 민간전문가 11명이 참여하는 '지식재산 전략회의'를 창설했다.

이후 지식재산제도 개혁에 힘을 기울인 일본은 과학기술과 특허정책을 조직적으로 연계하기 시작했다. 현재 우리나라 국회에 계류돼 있는 '지식재산전략기본법'이 이미 일본에서 당시 제정됐고, 총리 산하에 지식재산전략본부가 구성된 것은 물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민간이 뭉쳐 후속조치를 내놓는데 여념이 없었다.

지적재산 분야에서 국가 차원의 기업경쟁력 강화를 위해 관세정률법을 제정하고, 특허 고등재판소도 설치했다. 이를 바탕으로 민간기업들은 다른 나라 후발기업들을 견제하기 위한 활동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지난 2003년 이후 일본의 반도체·디스플레이 기업들은 급부상하는 우리나라와 대만기업들에 대해 동시 다발적인 특허이의를 제기해 애를 먹였다.

일본이 올해 발표한 '지적재산계획'은 특허서비스를 혁신하고, 자국 중심의 국제표준화 작업에 나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일본은 지난해 12월 지적재산전략본부에서 국제표준 관련 종합전략을 구체화했다. 특허 국제표준을 주도하기에 유리한 산업에 대해 전략적으로 연구개발(R&D) 자금을 배분하고, 국경을 넘어 인적·제도적 네트워크를 강화한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따라 올해부터 ▲기업들의 해외특허 조기취득 지원 ▲미국·유럽과 특허출원 양식 통일 등 특허제도 공동화 ▲국제 특허정보 상호 이용 ▲'특허법 조약' 실현을 향한 교섭 가속화 ▲후발국가에 대한 지재권 제도·입법 지원에 나서는 모습이다.

일본 특허청은 내년 기업들의 특허유지비용을 2~4%로 인하키로 결정하는 등 실질적인 서비스 혁신도 진행하고 있다. 이는 4년여만에 특허료를 다시 내리는 것으로, 기업들이 기술 혁신을 더 활발히 추진토록 유도하기 위한 방침이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국내에서 특허유지비용이 미국보다 크게 높다는 점에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 상태다.

일본에서 전문화를 바탕으로 지적재산 소송의 심리기간을 단축시키고 있다는 점도 배울 부분이다. 최근 일본 최고재판소(대법원)는 지재권 관련 민사소송의 1심에 소요되는 기간이 지난해 평균 12개월로, 9년 전에 비해 1년이상 줄어들었다고 발표했다. 최고재판소는 지재권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부서를 늘리고, 특허에 정통한 변호사가 늘어난데 따른 것으로 분석했다.

우리나라에선 성장단계에 있는 중소기업 가운데 적지 않은 수가 특허소송의 장기화로 활로를 펴지 못한 채 도태되고 있다.

◆'특허선진국' 중심 네트워크 가속화

일본의 해외특허전략과 마찬가지로 미국과 EU 등 '특허선진국'이 참여하는 국제네트워크가 공고해지고 있다. 이러한 선진국 간 협력은 지재권 분야에서 각국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수단이 되고, 후발국가엔 더 높은 '특허 진입장벽'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EU는 지난 4월 범유럽 차원의 단일특허시스템을 제안했다. 이는 EU 27개 회원국의 특허를 통일해 신청수속을 간소화하고, 비용 또한 줄이기 위한 것이다. 각 회원국의 특허시스템을 EU 공통특허로 바꾸게 되면, 1개 국가에 특허를 신청할 경우 역내 모든 국가에서 통용되는 효율성을 확보하게 된다.

유럽위원회(EC)는 유럽이 지적재산 경쟁력에서 미국과 일본에 뒤쳐질 염려가 있다고 판단, 회원국의 특허정책 공통화를 강하게 호소하고 있다. 또 유럽특허사무소와 연계해 룩셈부르크 유럽재판소 산하에 특허소송을 전담할 중앙법원을 창설하는 데에도 나서고 있다. 회원국마다 다른 특허소송 체계를 일원화하고, 불필요한 비용을 없애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나아가 유럽특허청은 EU 회원국 상호 간 협동과 분업에 기초한 '유럽특허네트워크(EPN)' 건설도 추진하고 있다. 유럽특허청에서 각국 특허 데이터베이스(DB)를 활용해 '특허맵' 작성 등 통합체계를 구축하는 'EPN'은 현재 시범 운영 중이며, 연말까지 구체적인 체계가 완성될 예정이다.

유럽뿐만 아니라 '특허심사 하이웨이'를 기반으로 한 선진국 간 특허협력 체계도 단단해지고 있다. 일본특허청은 지난해 7월 미국을 시작으로 영국, 우리나라와 '특허심사 하이웨이'를 구축하는데 나서고 있다.

이 제도는 A국가와 B국가에 공통으로 특허가 신청된 경우 A국에서 특허로 등록될 수 있다는 결정이 내려지면, B국가는 A국의 심사결과를 활용해 해당 특허출원을 신속하게 심사하는 제도다. 이 제도를 활용하면 출원인은 해외에서 조기에 특허를 얻을 수 있고, 각국 특허청 간 특허정책의 질을 높일 수 있게 된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선진국 간 특허 네트워크 실현에 동참하고 있어 긍정적이다. 한국은 지난 4월 일본과 '특허심사 하이웨이' 구축에 합의했고, 내년 1월1일부터 미국과 역시 같은 프로그램을 운영키로 했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 일본, 유럽, 중국의 세계 5대 특허청은 지적재산 분야에서 상호 협력을 강화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해나가고 있다. 지난 5월 열린 각국 특허청 대표 모임에서 참가자들은 심사경험에 대한 정보 및 성과를 공유하고, 특허정보 검색과 심사결과를 최대한 상호 활용키로 합의했다.

5개국 특허청은 ▲특허심사 모범사례 발굴 및 심사실무 간소화 ▲검색 및 심사파일에 대한 접근 강화 ▲심사관 훈련 ▲특허분류 및 특허정보의 상호 교류 등에서 실무협의를 추진키로 했다. 또 향후 특허통계와 관련한 미국, 일본, 유럽연합의 실무그룹에 한국과 중국이 함께 참여하게 됐다.

선진국 중심의 특허전략을 바탕으로 한 국제 네트워크가 공고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나라 역시 질적인 부분의 지적재산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국가적 전략체계 구축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시점인 것으로 판단된다.

명진규기자 almach@inews24.com 권해주기자 postman@inews24.com 서소정기자 ssj6@inews24.com 이지은기자 leezn@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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