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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환의 경제칼럼]그래도 희망을 본다


경제위기에서 최진실 자살까지..암울한 세상의 희망찾기

온통 암울한 뉴스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경제위기를 비롯해 거품붕괴로 아수라장이 되버린 세계경제. 최진실 씨의 자살까지. 답답하고 암울한 뉴스가 우리를 휘감고 있습니다.

저는 최진실 씨가 자살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뉴스를 보고 정말 믿기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깊은 인간적 고충은 알 수 없지만 정말 강하고 어려움을 잘 극복한 사람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좌절을 극복한 뒤 과거의 성공에 연연하지 않고 새로운 변신을 이뤄내는 최 씨를 저는 연예인이 아닌 인간으로 좋아하고 대견해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최 씨가 자살했다는 뉴스가 선뜻 믿기지 않습니다. 최진실 씨의 명복을 진심으로 기원하고 그의 가족들이 큰 슬픔을 잘 이겨내기를 빕니다.

이런 때는 희망을 찾고 싶어집니다. 또 하나의 답답한 글로 어둠을 덧칠하기보다는 작은 희망이라도 찾고 싶어집니다.

어둠은 현실이지만 미래는 희망입니다. 우리의 경험은 말해줍니다. 경제위기는 극복되지 않은 적이 없었고 대체로 좋았던 시절(호황)이 나쁜 시절(불황)보다 기간이 길었습니다. 지금은 양극화로 고생하지만 빈부격차는 꾸준히 줄어온 게 역사적 진실입니다. 불황으로 일자리가 없어 고생하지만 일자리의 종류와 숫자도 지속적으로 늘어왔습니다.

우리 생활 속을 들여다보면 알 수 있습니다. 커피를 만드는 전문가 바리스타, 네일아티스트, 쇼핑호스트, 웨딩플레너, 파티플레너 등은 이제는 익숙해진 새로운 직업들입니다. 새로운 직업이란 새로운 봉사자의 출현을 뜻합니다. 직업이란 다른 사람이 필요한 것을 제공하는 '댓가를 받는 봉사'입니다.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보살핌을 받는 종류가 다양해지고 삶에 있어 선택의 폭이 넓어지는 것입니다. 어려움 속에서 우리는 서로 봉사하고 보살피는 행위를 늘리고 있습니다. 수많은 직업들을 우리들은 지금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몇종류의 신발을 가지고 계신가요. 아니 사용하신 적이 있나요. 제가 어렸을 때는 운동화 한 켤레와 실내화 하나면 족했습니다. 지금은 종류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신발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등산화, 스키화, 베드민턴화, 조깅화, 골프화, 물놀이용 스니커즈, 구두 등 다양한 종류의 신발들이 신발가게 한 곳이 아닌 전문점에서 팔리고 있습니다. 신발장 속에 진열돼 있는 신발들은 우리들의 삶이 지속적으로 풍요로워져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증거물입니다.

우리를 괴롭히는 양극화와 부의 집중은 영원한 것이 아닌, 잠시 잘못된 외도라는 사실을 역사는 보여줍니다.

예전에 유럽여행을 다녀온 경험이 있습니다. 여행은 영국(런던)을 시작으로 프랑스(파리) 이탈리아(로마) 그리스(아테네)를 거쳐 이집트로 이어졌습니다. 유럽문명이 전파된 경로와 반대방향입니다. 여행일정이 문명의 전달경로를 거슬러 진행되는 이유는 그래야만 계속 볼 거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구경을 하면 맛난 음식을 먼저 먹고 맛없는 음식을 나중에 먹는 것처럼 여행이 싱겁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역사적 유물은 시대를 거슬러 갈수록 그 규모가 훨씬 웅장했기 때문입니다. 이집트의 룩소와 카르낙신전 유물은 이탈리아의 콜로세움보다 그 규모가 웅대하고 이탈리아의 유적은 프랑스의 유물보다 규모가 장대합니다.

과거로 거슬러 갈수록 인간이 만든 유적의 규모가 장대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집중돼 있던 부와 권력이 역사가 흐르면서 점차로 여러 사람에게 골고루 나눠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산업혁명 이후의 영국이 고대 이집트보다 훨씬 부유하고 강력한 국가였지만 영국의 여왕과 수상은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처럼 나라의 부와 역량을 자기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역으로 평범한 일반인들이 차지하는 몫은 그 절대치 뿐 아니라 비율 자체도 높아졌습니다. 때문에 웅장한 건축물은 적어졌지만 다양한 문화적 유산이 현대로 올수록 많아지는 것입니다. 시대가 흐를수록 부가 일부에 집중 하는 게 아니라 골고루 사람들에게 널리 퍼진다는 게 역사가 보여준 진실입니다. 우리에게 고통을 주고 있는 빈부격차의 확대, 부의 집중화는 일시적인 현상이라는 증거입니다.

인간의 경제적 자유와 타인에 대한 봉사와 보살핌은 항상 확대돼 왔다는 사실을 바로 우리주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힘든 시절을 견디면 좋은 날이 반드시 옵니다. 우리가 직무를 맡긴 정치인들이나 관료들이 제 역할을 하면 견디기도 쉽고 좋은 날도 빨리 오겠지요. 그러나 그렇지 못하다고 해도 너무 실망하지는 마세요. 새로운 선택의 시기는 또 다가오고 우리 민초들은 꾸준하게 역사를 발전시켜 왔습니다.

글을 쓰다 보니 제 주변도 많이 어렵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두 아들부터 한번 꼭 안아줄 생각입니다. 주변동료와 가족들의 손을 꼭 잡고 희망의 미래를 열어나가시길 바랍니다.

/최창환 칼럼니스트(column_choiedai@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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