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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욱의 바이오 세상]당뇨병 이야기


비만인구의 급증 추세가 조절되지 않는다면 세계적으로 당뇨병 환자의 급증세는 현재보다 더 심각해질 것이라는 외신이 눈에 띈다. 최근 세계당뇨병재단의 발표에 따르면 세계 당뇨병 환자의 수가 2억5천만 명으로 급증하였다고 한다.

당뇨병으로 심각하게 몸살을 앓고 있는 10개국 중 7개국은 개발도상국인데 2025년경의 세계 당뇨병 환자수는 3억8천만 명 이상으로 증가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매 10초마다 한 명 꼴로, 전세계적으로 매년 3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당뇨병은 이제 네 번째로 흔한 사인(死因)이 되었다. 우리나라도 이미 당뇨병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나라가 되었다. '당뇨예비군'으로 표현되는 잠재 환자까지 포함하면 무려 전체 성인 인구의 15% 이상이며 당뇨병 관리가 절실하다고 한다.

의학용어로 'Diabetes melitus'라고 불리는 당뇨병은 혈당수치가 일시적으로나 규칙적으로 정상수치를 넘어서는 경우에 발생한다. 당뇨병은 음식조절, 운동, 인슐린 주사(한 달에 1회 이상) 등과 같은 요법으로 증상을 완화시킬 수 있지만 아직까지는 근본적인 치유가 불가능한 질병이다. 하지만 관리와 치료를 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둘 경우에는 혈당 수치가 급속하게 올라갈 가능성이 높고 혼수상태, 심장질환, 신장훼손, 실명, 수족의 궤사, 발기불능과 같은 합병증을 유발하기도 한다.

당뇨병은 혈액검사만으로 간단하게 진단할 수 있다. 증상이 없는 경우 8시간 이상 금식 후에 측정한 혈당이 126mg/dL 이상이거나, 경구 당부하 검사 2시간 후 혈당이 200mg/dL 이상인 경우를 당뇨병이라고 진단한다. 물을 많이 마시거나 소변이 많아지고 체중이 감소하는 동시에 식사와 무관하게 측정한 혈당이 200mg/dL 이상일 때도 당뇨병으로 진단하기도 한다.

당뇨병은 인슐린에 의존하느냐 의존하지 않느냐에 따라 각각 제1형과 제2형, 두 가지로 나눈다. 인슐린 의존형인 제1형 당뇨병은 아주 오래 전부터 알려져 왔다. 주로 유아기나 청소년기에 발생하는데 신체의 자가 면역체계에 이상이 생기면 인슐린(혈액에서 포도당을 제거하는 호르몬)을 분비하는 췌장세포가 파괴된다. 인슐린이 없으면 인간의 몸은 두 가지의 증상을 나타낸다.

구체적으로 혈당이 높으면 눈과 심장을 비롯해 여러 장기가 손상, 훼손되고 단백질의 합성능력이 떨어져 몸이 전반적으로 기운과 체력을 잃게 된다. 제1형은 외부에서 인슐린을 주사하면 당뇨병 증상이 바로 호전된다. 사실 1922년 프레더릭 벤팅과 찰스 베스트라는 두 과학자가 인슐린의 실체와 역할을 발견하기 전까지만 해도 제1형 당뇨병에 걸린 환자는 거의 모두가 목숨을 잃었다.

인슐린 비의존형이라고도 하는 제2형 당뇨병은 1935년에야 비로소 그 정체를 드러냈다. 발견자는 의사 해리 힘스워스이다. 오늘날 당뇨병 환자의 95%가 바로 이 제2형 당뇨병에 속한다. 인슐린 비의존형인 제2형 당뇨병은 일반적으로 몇 년에 걸쳐 서서히 진행된다. 몸에서는 인슐린이 분비되지만 세포가 정상적으로 인슐린에 반응하지 못하는데 그 원인이 있다. 제2형 당뇨병의 치료는 음식조절, 운동, 체중 감량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으며 특히 활동량이 적은 사람, 비만한 사람, 노인 등이 제2형 당뇨병에 걸릴 확률이 높다. 제2형 당뇨병도 완치가 불가능하지만 대개는 인슐린에 의존하지 않고도 어느 정도 조절이 가능하다.

간단히 말해 유전적인 요인이 많은 제1형보다 후천적 환경에 요인하는 제2형 당뇨병에 걸릴 가능성이 많다. 제1형 당뇨병 환자는 정상인에 비하여 수명이 15년 짧아지고, 제2형 당뇨병 환자는 평균 5년 내지 10년 정도 짧아지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어떤 형의 당뇨병에 걸리든지 비교적 오랫동안 장수하며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의미이다.

당뇨병 연구의 커다란 진척은 1869년 독일의 의사 파울 랑게르한스(Paul Langerhans)가 췌장에서 섬세포를 발견하면서 이루어졌다. 오늘날 이 섬세포는 발견자의 업적을 기리는 뜻에서 '랑게르한스 섬'이라고 불린다. 발견 당시 랑게르한스는 이 섬세포가 호르몬을 만든다는 사실까지는 알지 못하였다. 그런데 1889년 슈트라스부르크 대학교의 메링과 민코프스키는 매우 흥미로운 사실을 우연히 발견하게 된다. 개에서 췌장을 제거하자 갑자기 오줌의 양이 많아지고 그 오줌에 파리떼가 들끓는 것을 본 것이다.

이 현상의 규명에 매달린 두 과학자는 곧 개의 오줌에 당분이 많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이로써 그들은 췌장 내 세포들이 당분 조절을 담당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오줌으로 당분이 빠져나가는 증상을 '췌장당뇨'라고 명명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당시 전세계의 많은 의사들에게 흥미로운 실험 결과로 작용했다. 캐나다의 정형외과 의사인 프레더릭 벤팅도 그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절친한 친구가 당뇨병으로 숨지자 이를 계기로 1921년 당뇨병 연구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원래 정형외과 의사였던 벤팅은 기초적인 동물실험을 위한 실험실조차 없던 차에 토론토대학교 생리학과의 매클라우드 교수를 찾아가 당뇨병의 치료 가능성을 설명하고 방학기간 중에 실험실과 실험장비를 사용하여도 좋다라는 허락을 받아내었다.

매클라우드 교수는 당초 당뇨병에는 관심도 별로 없었고 벤팅의 아이디어에도 회의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 온 찰스 베스트라는 자기의 학생까지 조수로 붙여 주었다. 바로 실험에 돌입한 벤팅과 그의 조수 베스트는 몇 번의 시행착오와 힘든 노력으로 개의 췌장의 랑게르한스 섬에서 분비되는 생리물질을 추출하는데 성공, 그 물질을 '아일레틴'이라 불렀다. 섬에서 분비되는 생리활성 물질이라는 의미로 명명되었지만 나중에 '인슐린'이란 이름이 바뀌게 된다.

일년 뒤인 1922년 1월 이 두 과학자는 실제 당뇨병을 앓고 있는 13세의 어린 남자 환자를 대상으로 개의 췌장에서 추출한 물질을 투여, 당뇨병으로 인한 고통스런 증상이 급격히 호전되는 것을 보게 되었다. 당뇨병이 치료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 준 이 소식은 곧바로 세계적인 관심을 일으켰다. 정확히 1년 뒤 1923년 벤팅은 그에게 관련 실험을 수행할 기회를 준 매클라우드 교수와 함께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으로 수상하였다.

하지만 노벨상 수상의 기쁨과 영광은 오래가지 못했고 추문으로 얼룩져 버렸다. 그 이유는 피와 땀을 흘려 결과를 얻은 벤팅이 수상 직후 매클라우드 교수의 수상에 정식으로 이의를 제기하였기 때문이었다. 벤팅은 언론을 통하여 매클라우드 교수는 실제로 실험실만 제공한 것 뿐이고 실험이 절정에 달하였을 때에는 고향인 스코틀랜드에서 장기휴가를 보내고 있었다고 강하게 불만을 토로하였다.

노벨상의 공동 수상이 번복되지 않자 벤팅은 그의 뜻을 세계에 널리 알리고자 그의 조수인 베스트에게 노벨상의 상금 절반을 나누어주고 더 나가선 인슐린과 관련된 특허 권리를 토론토대학교에 무상으로 제공하기로 결정하였다. 토론토대학교는 인슐린 제조권을 조그마한 제약회사인 '릴리'라는 회사에 넘겨주고 그대신 '인슐린위원회'를 만들어 인슐린의 생산을 표준화하고 관리, 감독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기로 하였다. '릴리'는 1923년부터 소로부터 인슐린을 추출하기 시작하면서 오늘날 세계적인 바이오 제약회사인 일라이 릴리 (Eli Lilly)의 밑거름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그 후 소에서 추출한 인슐린은 1955년 단백질 구조가 밝혀지고 그 결과를 토대로 1979년에는 인간의 인슐린을 유전공학적인 방법으로 대량 생산하는 기술이 확립되어 당뇨병 환자의 급증으로 인한 인슐린 부족사태에 대한 우려는 말끔히 사라졌다. 바이오 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인슐린의 가격은 가난한 당뇨병 환자가 투여하여도 부담이 없는 가격이 되었다.

벤팅과 베스트는 연구성과를 특허로 내어 막대한 부를 거머쥘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들의 연구 덕분에 제1형 당뇨병은 치명적인 질환에서 만성 질환으로 바뀌었고, 물론 인슐린 주사를 매일 맞기란 절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최소한 꽃을 피워보지도 못한 채 생을 마감하는 비극은 없어진 셈이다. 어쨌든 제1형 당뇨병 환자들은 아무 욕심 없이 인슐린을 널리 베푼 캐나다 의사인 벤팅에게 큰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최근 한 연구기관의 조사 결과에 의하면 당뇨병 발병 비율이 가장 높은 종족은 미국 애리조나 주의 인디언 보호지역에 살고 있는 피마(Pima) 인디언이라고 한다. 피마족 남자의 약 63%, 여자의 70% 이상이 당뇨병에 걸려 있다는 보고가 발표된 바 있는데 몽골로이드계(황색 인종)에 속하는 피마족의 비만과 당뇨병에 관한 비극은 검약(儉約) 유전자에서 비롯된다고 여겨진다.

검약 유전자란 수천, 수만 년 동안 농사를 지으며 제한된 육식과 최소한의 영양섭취로 생활하여온 아시아인들에게 소량의 당만을 분해시키는 생리학적 기능을 담당하는 DNA의 집합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 황색인종은 정제되지 않은 최소한의 당분을 섭취하여 살아나갈 수 있도록 진화를 통하여 농경문화에 적응해 왔다는 의미이다. 즉, 유사 이래 우리의 몸은 백당을 포함한 고도로 정제된 설탕과 고열량 음식에 노출된 적이 없다가 최근 길어야 50~100년 사이에 너무나 많은 정제 당에 무방비로 노출되면서 겪는 천재가 아닌 인재가 바로 당뇨병이라 하겠다.

/정성욱 인큐비아 대표 column_sungook@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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