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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문영의 IT 생각]컴퓨터와 믿음


처음 컴퓨터를 본 사람들은 컴퓨터가 대단히 정확한 기계라고 생각한다. 사실 정확한 기계로서 컴퓨터는 칭송받을만 하다. 인간의 인지능력을 벗어나는 셈법이 가능하니까.

그래서 우리는 컴퓨터로 정확하게 탄도를 계산한다는 전략무기들을 보면 당연히 그럴 것이라고 믿는다. 또 컴퓨터에 의해 명확하게 소수점 아래까지 딱 맞아 떨어지는 급여명세서에 계산이 잘못되지 않았을까 검산해보려 하진 않는다. 적어도 소수점까지 적혀 나온 숫자가 틀릴리야… 하는 심정이다.

어쨌든 미래 공상과학 영화 등에서 컴퓨터는 가공할 정도의 정확성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 정확성이라는 숫자는 어느덧 그것이 과학이고 진리인 양 쉽게 둔갑한다. 누군가 사람의 머리카락을 대략 1백만 개쯤이라고 하는 것과 컴퓨터가 계산해보니 21,051,196개라고 했다면, 어느 쪽을 믿겠는가? 우스개로 이야기한 것이라 믿지는 말자. 뒤의 숫자는 내 전화번호다.

0과 1밖에 모르는 이 단순 무지몽매한 기계에 합리성과 공평함, 과학을 보태면서 인간은 스스로 그 컴퓨터에 굴종하기 시작했다. 컴퓨터가 가장 적당한 고등학교를 배정해준다. 사람이 배정하면 잡음이 생긴다. 컴퓨터가 행운의 이벤트, 아파트 분양 당첨자를 골라준다. 사람이 선정하면 뒷말이 많아진다. 로또번호도 [자동]으로 컴퓨터가 골라주고, 판사들의 사건배당도 컴퓨터로 직접하진 않겠지만, 컴퓨터식의 무작위 추출로 이뤄진다고 한다. 왜? 사람이 하면 말이 많아지니까.

지식의 바다라고 하는 인터넷에도 [운세]라는 단어의 광고 등록건수는 단어에 따라 매출이 수천만 원 차이난다는 꽃배달 만큼이나 가득 붙어 있다. 이혼상담이나 교통사고 합의 등보다 훨씬 많은 사이트가 링크되어 있다. 그러나, 세계 최첨단의 컴퓨터와 네트워크가 총동원되었어도,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의 부실과 그 이후 영향에 대해서 컴퓨터는 여전히 아무 것도 모른다. 사람들은 핵무기도 만들 수 있는 지식과 고성능 컴퓨터를 갖고도 단 하루 뒤의 미래주가도 제대로 계산해 내질 못한다.

우리 사회는 언제부터인가 컴퓨터처럼 일하는데 효율적이고 기능적인 사람만을 선호하게 됐다. 아버지는 돈만 많이 벌면 되고, 배우자는 미인이고 부자면 된다는 식의 생각이 효율 좋은 컴퓨터를 찾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러나 사람을 믿는다는 것은 사람이 합리적이거나, 과학적이어서가 아니다. 사람만큼 불합리하고, 변덕이 심한 동물도 드물다. 사람에 대한 신뢰는 용서와 사랑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한 인간의 생애를 오로지 자신이 믿는 신앙과 사람에 대한 사랑만으로 채울 수 있다는 것은 무한한 존경을 받을 만한 일이다. 故 김수환 추기경은 그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다. IT기술과 컴퓨터가 우리의 생활을 가득 채우고 사는 지금 (한국인터넷진흥원의 자료로는 73퍼센트의 다인 가구가 주평균 15시간을 이용), 사람에 대한 믿음을 다시 새겨볼 일이다.

/임문영 iMBC 미디어센터장 column_moon0@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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