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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부처 힘겨루기에 게임 규제만 '봇물'


업계 "게임 전문가들의 실질적인 진흥책이 필요하다"

[허준기자] 이명박 대통령 취임 직후 이른바 ‘명텐도’ 소식이 전해지면서 성장동력 게임산업 지원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다. 그러나 이후 MB 정부가 내세운 게임분야 정책은 문제의 본질적 해결보다 드러난 문제만 잘라내는 미봉책의 연속이었다. 게임(소프트웨어)의 가치로 대박을 터트린 닌텐도를 게임기가 많이 팔렸다고 인식했다.

'게임규제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얻은 이명박 정부의 게임정책 가운데서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진행된 것도 존재한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오픈마켓 게임물 자율등급분류 제도로 꼽힌다.

구글과 애플이 게임 사전 등급분류 제도를 문제삼아 구글 플레이스토어와 애플 앱스토어의 게임 카테고리를 폐쇄하자 정부는 오픈마켓 게임물에 대한 사전 등급분류를 폐지해 오픈마켓 게임 카테고리를 다시 오픈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그럼에도 자율등급분류제는 선제적 대응이 아니라 구글과 애플의 게임 카테고리가 폐쇄된 이후 국회와 업계의 요구에 봇물을 이루자 떠밀리는 식으로 추진됐다.

게임업계 고위 관계자는 "그나마 눈에 띄는 진흥책은 오픈마켓법인데 이마저도 국회의 요구에 따라 수동적으로 이뤄진 것"이라고 말했다.

◆게임산업, 성장동력 꺾어놔

업계에서는 이 외의 현 정부의 게임 진흥정책으로 글로벌게임허브센터 출범, e스포츠 전용 경기장 건립 추진, 모바일게임 글로벌 퍼블리싱 사업 등을 꼽는다.

그러나 글로벌게임허브센터는 사실상 성장동력으로서의 개임분야와 거리가 있는 아케이드게임을 위한 기구였다. e스포츠 전용 경기장 건립은 올해 8월까지 완공한다는 계획이었지만 추진 자체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모바일게임 글로벌 퍼블리싱 사업도 시작 발표는 요란했지만 성과가 없다.

게임업계 고위 관계자는 말한다. "차라리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냥 놔뒀으면 좋겠습니다. 정부가 나서면서 잘 나가던 게임산업이 암흑기로 들어섰습니다. 어쩌면 2012년은 최초로 게임 산업이 마이너스 성장을 한 해로 기록될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주요 게임업체들의 성장 곡선은 올해 3분기를 기점으로 멈췄다. 넥슨, 엔씨소프트, 네오위즈게임즈, 넷마블, 위메이드 등 주요 게임업체들의 3분기 국내 매출은 큰 폭으로 하락했다.

게임의 장점을 살린다는 '게임화'이론을 도입하려는 북미나 유럽, 게임산업을 전담하는 보좌관을 백악관에 두고 있는 미국 등은 부작용이 있다고 금지하는 식의 단순처방전을 내놓지는 않는다. 많은 관계자들은 지금 교육부나 여성가족부, 문화부가 게임의 탓으로 돌리는 문제들은 교육, 가족, 문화 등 해당부처가 본연의 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서 생긴 탓이 더 크다고 말한다.

◆여가부-문화부 힘겨루기에 교과부까지 가세

돌아보면 이명박 정부의 게임규제 정책은 여성가족부와 문화체육관광부, 그리고 교육과학부가 힘겨루기를 하면서 더욱 탄력을 받았다.

여가부는 학생들이 잠을 못자며 한밤에도 게임에만 열중하고 있다며 12시가 넘으면 게임을 할 수 없는 이른바 '신데렐라법(셧다운제)'을 들고나왔다. 게임산업 주무부처인 문화부는 규제 일원화를 외치며 게임시간선택제라를 앞세웠다.

두 부처는 셧다운제와 게임시간선택제를 두고 첨예하게 대립했다. 여가부는 학생들이 지나치게 게임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한 처방전이라고 했지만, 입지가 점점 좁아지고 있는 부처의 생존을 위해 전방위적으로 규제 업무에 손을 대는 것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었다. 일각에서는 여가부가 축소된 기금을 게임업계에서 마련하기 위해 셧다운제를 추진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결국 여가부는 셧다운제 입법에 성공, 게임산업에 깊숙이 관여하게 됐다. 문화부도 부모가 자녀의 게임 접속 시간을 통제할 수 있는 게임시간 선택제를 통해 주무부처로서의 존재감을 재확인했다.

상황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두 부처의 힘겨루기가 마무리될 때쯤 교육과학부가 나섰다. 학교폭력과 왕따 문제를 해결하려면 게임산업을 규제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이주호 교과부 장관은 직접 게임산업협회를 방문해 게임의 문제점을 지적했고 결국 '쿨링오프제'를 내놨다. 쿨링오프제에는 2시간 연속해서 게임을 하면 강제적으로 접속을 끊는 내용이 담겨있다.

쿨링오프제는 법제화의 문턱을 넘지 못해 ‘일단정지‘됐지만 언제든 다시 등장할 수 있는 여지는 남아 있는 셈이다.

게임업계 대외협력 담당자는 "도대체 어느 부처가 게임산업을 담당하는지 혼란스러울 정도로 올해는 수많은 정부부처에서 게임산업에 관여했다"며 "진흥을 해주면 좋겠지만 규제를 한다고 해도 제발 한 부처에서 추진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호소했다.

그렇다면 게임규제 부처들이 걱정하는 만큼 ‘게임금지법‘이 효과적일까. 각종 조사들을 살펴보면 학생들은 여전히 게임을 한다. 바뀐 게 있다면 부모의 주민등록번호를 이용한다는 점이다.

민주당 전병헌 의원이 지난 10월 26일 국정감사를 통해 공개한 셧다운제 실태결과보고서에 따르면 셧다운제 시행 이후 자정 이후 게임을 이용하는 청소년 비율은 0.5%에서 0.2%로 0.3%만 감소했다. 전 의원 측은 이는 거의 무시해도 좋은 수치라고 설명했다.

업계 관계자는 부모 주민번호 이용증가와 관련, “정확한 통계치가 나오지 않지만, 청소년의 심야시간 게임이용이 줄어든 만큼 40대의 게임이용 인구가 늘었을 것”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정부에도 게임산업 전문가가 필요하다

게임업계는 이처럼 게임진흥 정책이 전무하다시피한 이유를 '게임산업에 대한 이해가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게임을 잘 알고 게임산업의 특성을 아는 전문가들이 정책을 결정해야 하는데 정부부처 관계자를 만나보면 게임에 대한 이해가 굉장히 떨어진다"며 “전문분야를 시간을 가지고 연구하지 않고 1~2년마다 순환하는 방식의 전환도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게임 진흥 전문기관도 상황은 마찬가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전문인력들도 줄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지난 2009년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과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 한국소프트웨어 진흥원과 한국게임산업진흥원 등 4개 진흥원이 통합돼 출범했다.

4년이 지난 2012년, 과거 게임산업진흥원 직원 39명 가운데 11명이 퇴직했다. 퇴사율은 28%로 다른 진흥원 직원들의 퇴사율보다 2배 이상 높다.

민주통합당 전병헌 의원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인사 분야에서 철저히 게임산업을 홀대하고 있다"며 "방송영상산업진흥원이 고위직을 장악하고 게임에 대한 진흥은 거의 없다. 이는 곧 게임산업에 대한 전문성 부족으로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게임 전문 보좌관을 두고 게임 진흥책을 펴고 있고 중국도 자국 게임산업 보호를 위해 해외 게임업체의 직접 진출을 막고 있다"며 "우리 정부도 게임진흥을 위한 전문기구를 마련, 게임 수출 지원 등 실질적인 도움을 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허준기자 jjoony@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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