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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웨어진흥법 "구멍투성이"


기준 모호하고 '권고'만 수두룩…업계 "실효성 기대 안한다"

이명박 정부가 소프트웨어 첫 정책으로 내놓은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 시행안'에 대해 관련업계가 냉랭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지식경제부가 지난 21일 입법예고한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 개정(안)'은 하도급 사전 승인제 도입이 골자. 이 법이 시행될 경우 IT 서비스 업체들은 하도급을 하기 위해선 정부의 '사전 승인'을 받아야만 한다.

이 법령에는 하도급 사전 승인제 외에도 과업변경심의위원회 운영, SW기술자 신고제 실시 등에 관한 개정 내용이 포함돼 있다.

하도급은 규모가 큰 IT 프로젝트를 수행할 때 주 사업자인 대형 IT업체들이 중소 업체들에게 개발 대행 및 인력 파견 등을 맡기는 것을 말한다. 그 동안 하도급 관행은 SW업계의 고질적인 문제점 중 하나로 꼽혔다.

하지만 업계는 이번 법안에 대해 "실효성이 없다"며 별 기대를 보이지 않고 있다. 한 IT 서비스업체 관계자는 29일 "하도급에 대한 규제가 이전에도 없었던 것이 아니다"면서 "아무리 강력한 법안이 있다 해도 처벌 규정이 명확하지 않아 솜방망이나 마찬가지"라고 꼬집었다.

◆구체적 기준도 없는 하도급 사전 승인 '유명무실'

정부가 소프트웨어 하도급 사전 승인제를 통해 얻고자 하는 바는 명확하다. 그 동안 고질적인 병폐로 통했던 하도급 폐해를 줄이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IT 프로젝트가 한번 시행되면 많게는 5~6단계까지 하도급을 두고, 하도급 업체에게 불공정한 대우를 하거나 대금 지급을 미루는 등의 문제가 끊이지 않았다.

지식경제부 소프트웨어산업과 담당 사무관은 "하도급으로 인해 산업 구조 자체가 왜곡되고 있다"면서 "IT 프로젝트를 시행하는 곳이 하도급에 대한 모든 상황을 알고, 사전에 승인하도록 해 불법적인 하도급을 막도록 하는 것이 법안의 취지"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부의 이런 정책에 대해 관련 업계는 "그래서 어쩌라는 말이냐"는 반응이다. 한 IT 서비스 업체 고위 관계자는 "지난 정부 때도 전자정부 사업에 참여하려면 하도급 업체에 대한 사전 승인을 받아야 했다"면서 "그래서 승인을 받았는데, 크게 달라지는 점은 없었다. 단순한 권고 사항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이번 시행령안에서는 권고 사항이었던 하도급 사전 승인제가 '법령'으로 바뀌었다. 또 이를 지키지 않을 때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를 받게 된다. '하도급 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에 의거, 불공정 거래 행위 및 피해의 정도를 고려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벌점을 부과하거나 이 기준을 초과하는 경우에는 관계 행정기관의 장에게 입찰참가자격의 제한, 영업정지 그 밖의 조치를 요청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입법 예고까지 된 이 시행령에 '대통령령으로 정한 기준'이라는 것이 아직도 마련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아이뉴스24의 취재 결과 확인됐다.

예를 들면 '하도급은 X회 이하로 제한한다'라던가 '하도급 시 원 도급자는 발주 금액의 XX% 이상을 반드시 지급한다'라는 구체적인 기준 조항들이 마련되지 않은 것이다.

지경부 담당 사무관은 "법령 시행이 6월로 예정돼 있는데 그때까지는 적정성 판단 기준을 마련해서 고시할 계획"이라면서 "법령 시행에 문제가 없도록 할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업계와 원도급자, 하도급자간 입장이 천양지차인데다 정부는 이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아 모두의 입장을 수용하는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기준'을 불과 1개월여만에 만들어 내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대형 IT 서비스 업체와 함께 '협력사'로서 하도급을 주로 맡는 한 중소 IT 서비스 업체 관계자는 "지난 정부 때도 하도급 사전 심사가 있었지만 그래서 달라진 것은 없었다"면서 "IT 서비스 업계 및 소프트웨어 산업 전체에 뿌리깊은 구조적인 문제 중 하나가 바로 하도급인데, 이에 대한 기준을 한 달만에 어떻게 만들겠다는 것인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자발적' 과업변경, 법은 뒷짐 질 수밖에

개정되는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에서는 '과업변경심의위원회'도 운영하도록 돼 있다. IT 프로젝트 발주자가 사업자에게 프로젝트를 일단 맡겨 놓은 뒤 무리하게 변경을 요청하는 부분에 대해서 '엄정한 심사'를 통해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도록 하는 것이다.

프로젝트 변경 내용이 적절한지, 보상 수준은 합리적인지를 과업변경심의위원회를 통해 심사하게 한다는 것이 법령의 취지다.

이런 조치는 사업자의 피해를 예방하는 것에만 머물지 않을 것으로 정부는 기대하고 있다. 발주자 역시 수행해야 할 프로젝트에 대한 요구 사항 및 과업 내용서를 명확히 작성하는 계기가 돼 소프트웨어 사업 환경을 선진화하는 촉매가 될 것이란 얘기다.

그런데 과업변경심의위원회에서 과업 변경의 적절성과 계약 금액 조정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명확한 근거가 마련돼 있지 않다.

지경부 담당 사무관은 "부당한 과업 변경 요구가 일어난다면 사업자가 울며 겨자먹기로 하는 것이 아니라 제 3의 기관에 보호를 요청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발주자와 사업자가 상호 합의해 과업 변경 내용을 '자발적으로 수용'할 수 있다고 결론을 내리면 과업변경심의위원회는 별다른 위력을 발휘할 수 없다.

지경부 담당자는 "모든 프로젝트에서는 예기치 못한 변경이 일어날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면서 "이를 일일이 심의를 받다보면 오히려 프로젝트 효율성을 저해할 수 있어 양측에서 상호 수용할 수 있는 범위라면 심의대상에 포함시키지는 않는다"고 전했다. 즉 사업자가 현재의 부당하거나 무리한 과업 변경을 수용하기로 했다면 법은 할 일이 없어지는 셈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이미 예전부터 사업자들은 2차 프로젝트, 3차 고도화 사업 등을 고려해 현재 프로젝트의 다소 무리한 과업 변경 요구가 있어도 거의 받아들인다"면서 "거절하고 싶어도 이후 사업에서 불이익을 당할까봐 울며 겨자먹기로 수행할 수 밖에 없다"고 전했다.

정부에서 애써 과업변경심의위원회를 운영해 봤자 '변경에 따른 부분은 반드시 대금을 지급한다'와 같은 강제적이고 구체적인 조항이 있지 않는 한 결국 유명무실한 법안이라는 것이 이 관계자의 지적이다.

관련 업계는 이번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 시행 개정안이 한편으로는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는 큰 기대를 걸지 않고 있다. 정부가 실제 법의 혜택을 받게 될 중소 사업자들의 실익을 충분히 대변할 수 있는 법안으로 완성시킬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강은성기자 esther@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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