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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치워머'가 된 e스포츠 '레전드'들의 애환


프로스포츠의 경우, 은퇴를 목전에 둔 레전드급 노장 선수들의 경기외적 영향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10여년간 프로무대를 누비며 홈런타자로 명성을 누렸으나 후보선수로 전락한 모 선수가 경기 종반, 승패가 기운 상태에서 대타로 출장할 때면 홈구장 팬들은 일제히 해당 선수의 이름을 연호하며 열광했다. 삼진을 당해도, 병살타를 쳐도 관중들은 그저 좋아서 신난다. 그게 '진짜' 프랜차이즈 스타에 대한 팬들의 예우다.

추억을 안겨준 레전드에 대한 팬들의 반응은 대개 그러한 경우가 많다. 구단에도 플러스 효과를 준다.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젊은 코칭스텝보다 나이가 많은 대선수가 팀 운영에 부담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감독이 친히 마운드에 올라가 40대 노장투수로부터 공을 빼았고, 해당 투수는 덕아웃으로 들어가며 글러브를 패대기치는 경우도 볼 수 있었다. 기량이 떨어져도 포지션 한 자리 차고 앉아 젊은 후진들의 성장을 막는 '민폐'가 되는 경우도 종종 보인다.

V5를 달성한 SK텔레콤의 최고참 임요환과 플레잉코치 최연성은 e스포츠 무대를 대표하는 '레전드'다. 최초로 30대 프로게이머가 된 임요환은 e스포츠가 그 실체와 효용에 대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구색을 갖추게 한 일등공신이다. 최연성도 e스포츠 역사상 가장 찬란한 순간을 리드한 거목이다.

이미 전성기가 지난 이들은 부산 광안리에서 펼쳐진 신한은행 프로리그 결승 1-2차전 동안 펼쳐진 14세트의 경기에 한 차례도 나서지 못한 '벤치워머'다. e스포츠 10년사를 빛낸 최고의 주역들이지만 지금은 영략없는 '후보' 신세다.

그럼에도 구단 프런트와 선수들은 공의 상당 부분을 이들에게 돌린다. 우승후 박용운 감독은 "박용욱 전 코치가 해설자로 전직하기 전, 선수들을 지도하며 토대를 잘 갖췄고 플레잉코치로 전환한 최연성과 군입대 후 복귀한 임요환이 팀의 구심점으로 자리하며 팀 컬러가 변했다"고 밝혔다.

임요환이 "지금 우리 팀에서 제일 잘하는 선수는 김택용"이라고 인정할 만큼 이들 '흘러간' 스타들은 더 이상 경기력이라는 측면에선 팀의 중심이 아니다. 냉정하게 평가하면 이들의 기량은 현 시점에서 '잉여'에 가깝다.

SK텔레콤의 우승을 확정지었던 2차전 7경기에서 정명훈이 구사한 기습전략도 임요환의 작품이다. 임요환은 "그 전략을 통해 나를 제외한 우리 팀의 모든 테란 선수들이 이제동에게 승리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자신이 나섰다면 상대가 기습적인 전략에 데뷔했을 것이고 결국 패배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기량 향상을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고 분석이 될 대로 된 자신의 상황을 겸허하게 인정한 것이다.

탁월한 상품성을 바탕으로 '번듯한' 아이콘으로 자리잡은 임요환과 달리 '무적'의 이미지와 거친 입담으로 '악역'의 역할을 했던 최연성은 이번 결승전을 앞두고 또 '한 마디'를 남긴 바 있다.

SK텔레콤이 반드시 우승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화승이 우승하는 것은 e스포츠계에 큰 악재"라며 특유의 '트래시 토크(trash talk)'로 상대를 자극했던 것.

경기 후 왜 그랬느냐는 질문에 "코치가 4명이나 있는 팀이 한 명 있는 팀에 지면 문제인거 아니냐"고 궁색한 답변을 한 최연성은 "사실 군입대를 앞두고 있는 상태여서 이번 우승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던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선수생활 중 한번도 울어본 적이 없었으나 코치로 첫 우승을 일군 후 그만 울어버렸다"는 것이 e스포츠계의 '끝판 대장'이었던 최연성의 고백이다.

e스포츠 시장은 연간 단위 프로리그가 종료된 8월부터 두 달간 휴식기와 FA 선수들의 이적이 이뤄지는 에어콘 리그를 맞는다. 두 선수를 대체해 팀의 기둥이 될 거물급 선수의 영입이 예상되는 시점이다.

최연성은 팀 후배들의 개인리그 우승이라는 마지막 목표를 위해 마지막 불꽃을 태운 후 연내에 군입대할 전망이다. 임요환은 선수 생활 지속과 코치직 전환 사이에서 '선택'을 요구받는다.

지금까지 두 선수의 존재와 의지는 팀과 팬들로부터 지지와 성원을 받았다. 이들이 과거의 영화를 되찾을 순 없겠지만, 지금껏 해온 것 처럼 e스포츠를 떠받치는 '자양분'이 되길 기대하는 팬들이 많을 것이다.

서정근기자 antilaw@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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